Q. 당신이 몰입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가장 최근 몰입했던 일은 디스코드봇 개발을 했을 때였습니다. 데일리스크럼을 진행하며 매일 반복적으로 '어제 한일'을 말하기 위해 그 전날 썼던 '오늘 할 일'을 복사해 붙여 넣어야 했는데 여러 명이 작성한 데일리스크럼 속에서 내가 작성한 글을 찾는 것도, '오늘 할 일'을 복사하는 것도 너무 귀찮았습니다. 자동화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좀 서치를 해보니 슬랙봇처럼 디스코드봇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챗지피티와 자동화할 수 있는 코드를 같이 작성했습니다. 파이썬으로 작성된 초기 코드는 생각보다 구현이 간단해서 버스에서 40분 만에 개인 채널에서 봇을 만들고 기능 테스트까지 완료했습니다. 그때 짧은 시간에 뚝딱 기능이 만들어진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습니다.
Q. 몰입을 가능하게 만든 환경(시간, 공간, 사람, 도구 등)은 무엇이었나요?
(1) 자의성
제일 중요한 건 자의로 시작한 일인가입니다. 시킨 일도 해야 하는 일이면 곧잘 하긴 하지만, 역시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능률이 좋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 어떻게 더 좋게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아이디어도 쉽게 떠오르게 되더라고요.
(2) 조용한 공간
시끄러운 걸 싫어합니다.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사람 많은 곳, 시끄러운 곳에 가면 에너지가 -1씩 계속 깎입니다. 그래서 두 배나 비싼 버스를 타고 다닙니다. 몰입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보존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3) 혼자
아무리 친밀한 사람이랑 가도 작업 중간중간 짧은 대화를 오가기도 하고, 흐름 자체를 온전히 내가 쥐고 있지는 않습니다. 내가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두고, 온전히 몰입하고 싶을 때, 휴식할 때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혼자가 좀 더 몰입하기엔 좋은 것 같네요.
(4) 확실하고 바로 확인 가능한 결과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도 좋아하는데 몰입하지 못하고, 왜 최근 디코봇 개발에는 몰입이 가능했을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데이터분석은 모래 속에서 사금을 채취하듯이 몇천 건, 몇만 건의 데이터 속에서 의미 있는 정보를 찾아내는 작업입니다. 데이터를 이해하고 데이터를 이어 붙이고 가공하는 데만 며칠, 길면 몇 주가 걸리는 작업이죠. 빠르게 하기보다는 꼼꼼하게 보는 게 더 중요하기도 하고, 개발처럼 뚜렷한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서 나온 결과도 끈질기게 해석하는 게 중요합니다.
모델링도 채취한 금을 녹여 특정 모형에 맞춰 사용자의 편의를 도와줄 도구를 제작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사용자가 원하는 기능에 맞춰 적절한 모형을 선택했는지도 중요하고 도구가 얼마나 단단한지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틀 자체를 가져와도 이를 사용자에 맞춰서 맞춤형으로 만드는 작업이 오래 걸립니다.
이런 작업들도 모두 제가 너무 좋아하는 작업이지만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중간에 알기가 어렵습니다. 결과물이 나오는 작업 기간이 긴 편이죠. 그래서 중간중간은 몰입을 하더라도 몰입의 정도가 다른 것 같습니다.
(5) 결과물에 대한 기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에 대한 기대감이 크면 몰입이 잘 됩니다. 이걸 빨리 만들어야 당장 내가 내일 데일리스크럼을 덜 귀찮게 할 수 있겠구나란 생각이 드니 빨리 만들고 싶고, 결과물이 궁금해지더라고요.
Q. 몰입이 끊기게 된 순간은 언제였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최근 성인 ADHD가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로 몰입을 하지 못했습니다. 잡생각에 빠져서 멍 때리는 일도 종종 있었고요. 업무도 계속 리서치 작업을 진행했었는데 리서치 내용이 너무 통계기반과 알고리즘에 관한 내용이라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아 진이 빠졌습니다. 논문을 한 단락 읽어도 논문에 있는 한 단락에서 나오는 용어가 이해가 되지 않아 또 찾아보고, 그걸 이해하고 다시 논문에 돌아오는 걸 반복하다 보니 input만 잔뜩 있고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니 금방 샛길로 새게 되었습니다. 몰입을 하기 위해서는 능력에 맞는 도전과제를 해야 합니다. 새로운 분야의 리서치 작업을 하다 보니 능력치보다 높은 과제라 걱정과 불안으로 몰입을 하지 못했던 것 같네요.

Q. 다시 몰입을 하려면 무엇을 바꾸어야 할까요?
과제를 잘게 쪼개서 당장 실행 가능한 과제로 바꾸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디스코드봇도 챗지피티가 처음에 알려준 코드가 생각보다 간단해 보여서 바로 시작할 수 있었거든요. 과제에 대한 부담이 적어야 하고, 결과물이 없더라도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정의하고 만들어야 합니다. 따로 결과를 정리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PPT로 해당 내용을 정리해서 공유하거나 세미나를 가지는 등의 결과물을 스스로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