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발산팸의 시작
발산팸은 이력서 모임에서 만난 ENTP 세분의 '무한발산'에서 시작되었다.
발산을 멈추고 이제는 수렴을 하자는 취지로 맹그로브 고성을 같이 가기로 하였고, 2인실 예약의 남은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나도 같이 가게 되었다.
나도 한 발산하는 ENTP(J)이므로 수렴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같이 가는 분들과 친해지고 싶다고 예전부터 생각해 왔기 때문에 무리를 해서라도 꼭 가고 싶었다.
실제로 그날 오전에 4시간 짜리 자격증 시험이 있어 전날까지 공부하고 오후에 따로 출발하게 되었다…
다시 생각해도 오후에 늦게라도 고성에 갔던 건 올해 한 일 중 정말 정말 정말 제일 잘한 선택이었다.

# 수렴하고 싶었던 생각들
맹그로브 고성을 가기 전 요즘 고민하고 있는 주제들, 수렴해야 할 내용들을 정리해 갔다.
- 나는 어떤 재미를 추구하는가
- 사랑의 확신은 어디서 오는가
- 앞으로 커리어에 대한 구체적인 액션 플랜
하지만…
괜히 발산팸이 아니었다.
발산러들의 무한 발산으로 사색을 즐길 새가 없었고, 한 가지 주제가 나오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는 계속 무한 확장해 나갔다.
# 맹그로브 고성 여행이 좋았던 이유 : 안전지대에서 나를 드러내기

원래 가려던 곳에서 저녁도 못 먹고, 맥주박람회에서 사 온 딸기맥주도 터져서 제대로 먹지도 못 했지만
다들 마인드가 아무렴 어때 마인드라 모든 순간들이 그저 즐거웠다.
유독 왜 이번 고성 여행이 좋았을까를 떠올려보면 수렴하고 싶었던 첫 번째 생각 '나는 어떤 재미를 추구하는가'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재미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인생에서 ‘재미’라는 가치를 추구한다고 항상 말하고 있는데 어떤 재미를 추구하고 있는지 정의해 본 적이 없다.
재미를 세부적으로 분류하자면 4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 감각의 즐거움
- 관계 맺음
- 생각의 확장
- 새로운 경험
우선 1차원 적으로 내가 예쁜 걸 보고, 맛있는 걸 먹는 감각의 즐거움이 있을 것 같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얻는 즐거움도 있을 것 같고,
내 사고가 확장되면서 깨달음에서 오는 재미도 있을 것 같고,
새로움이 주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맹그로브 고성은 이 4가지 재미를 모두 충족한 여행이었기 때문에 더 강렬했지 않았나 싶다.
새로운 곳에서 예쁜 바다를 보고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내 생각이 확장되는 경험.
생각의 확장이 이 중 가장 키포인트라고 생각되는데
이유는 일상에서 생각보다 생각이 확장되기가 어렵고, 내가 가장 바라는 재미라 그런 것 같다.
다름을 틀린 것을 받아들여지는 한국 사회에서 내 의견을 말하는 건 항상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이다.
내가 지금 생각나는 일련의 생각의 흐름을 필터 없이 얘기한 경험이 얼마나 될까?
생각이 확장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야 한다.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이었기에 편안하게 발산을 했던 것 같다.
# 개인에 대한 존중 속에 나다움이 실현된다
개개인의 생각을 존중하는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다움이 발현되었다.
서로의 생각이 공유되는 과정에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남을 이해하고
다름을 통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다시금 되새기며 나다움이 짙어져 갔다.
정답과 효율을 강요받는 사회에서 다양한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받는 느낌을 받았다.
인정을 넘어서 나와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들이라 생각이 들어서
어떤 얘기를 해도 공감해 주고 이해해 줄 거란 믿음이 생겼다.
나의 생각을 검열하지 않고 얘기해도 이들은 잘 들어주겠지 생각이 들며 평안함 속에서 끝없는 발산을 하였다.
최근에 다른 모임에 나가 결이 안 맞는다는 걸 느낀 순간이 있었다.
누군가의 다정함을 희화화하는 모습을 보며 불편함을 느꼈다.
그러다 문득 SNS에서 봤던 글귀가 떠올랐다.

나 또한 말을 함에 있어서도 효율을 추구했던 때가 있었다.
상황에 맞는 적확한 단어라는 이유로 배려 없는 말을 전했으며
필요한 말, 해야 할 말만 전달했다.
하지만, 삶을 살아가면서 효율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목적지까지 얼마나 빨리 가는가 보다
어떻게 가는가, 어디를 들리는가, 누구랑 가는가 가 더 중요하다.
내게 소중한 사람들을 오래 내 곁에 두려면
말 한마디도, 행동 하나도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장착하지 않으면 누가 남겠는가
내 시간을, 남의 시간을
내 감정을, 남의 감정을
똑같이 존중하고 소중히 하자.
그런데 다정함이 마치 오글거리고, 무의미한 것처럼 표현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친절과 배려심을 무시하는 거라고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 다정함을 폄하하게 되면 다정함이 절실한 이 사회에서 더더욱 다정함을 찾기 어려워질 거라 생각이 들었다.
난 여전히 감사함을 마음껏 표현하고 싶고
나의 애정을 드러내고 싶으며
나의 생각을 때로는 사진으로, 때로는 일기로, 때로는 시로 표현하고 싶다.
다정함과 정직함이 오글거림으로 치부되는 순간
이게 ‘오버인가?’라는 생각에 내 감정을 숨기게 된다.
그들과 있었을 때는 그런 결이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게 많고, 하고 싶은 걸 숨기지 않으며
본인의 취향과 생각, 감정을 드러내는 멋진 분들.
타인에 대한 배려와 다정함이 장착된
주는 것에 인색하지 않은 사랑둥이들

# 맹그로브 고성

쿠알라룸푸르 반딧불이 투어에서 반딧불이가 서식하는 나무가 맹그로브라 불린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는데 우리가 머물던 숙소에 같은 이름이 붙어 있어 반갑고 신기했다.
맹그로브는 열대 지역 해안가에서 자라는 식물로, 다양한 동식물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면서 존재 자체로 지구 온난화를 막아주는 고마운 나무라고 한다.
이 얘기를 들으니 맹그로브 고성에서의 우리가 마치 맹그로브라는 안전지대 속에서 빛나는 반딧불이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안전지대라는 표현은 채채님도 해주셨는데 이제와 새삼 정말 알맞은 표현이었구나 싶다.
# 파도로 내 생각 씻어내기
폭풍 같던 1박을 보내고 조금은 여유로워진 마지막 날 아침.
끝없이 펼쳐진 바다에서 찰싹찰싹 요동치는 파도로 시선을 옮겼다.
멍하니 파도를 바라보다 보니 갖은 사념들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바다를 더 잘 느끼고 싶어서 바다와 맞닿은 곳에 앉았다.
그곳은 나만 좋아하는 공간은 아니었는지 벌레들이 진짜 많았다.
애써 노래도 들어보며 벌레를 의식하지 않으려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벌레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벌레를 피해 두세 발짝 뒤에서 본 바다는 파도를 직접 마주할 순 없었지만 여전히 파도소리가 선명했고, 바다뿐 아니라 산까지 내 눈에 담을 수 있었다.
흔히 말하는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아라. 그럼 더 많은 걸 볼 수 있을 것이다’가 이런 건가? 문득 싶었다.
굉장히 뻔한 말인데 이상하게 뻔한 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우린 종종 목표를 좇고, 몰입하며 이미 내 것인 삶을 내 것으로 만들고자 통제와 집착을 한다.
우리의 삶도 때때로 너무 애쓰지 말고 한 번씩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파도를 통해 생각의 뭉텅이를 내보내고 나면 새로운 생각들을 담아낼 수 있다.
뻔한 말도 뻔하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내 감정과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해야 할 것 투성이인 삶 속에서 비효율적인 멍 때리기를 통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면 억지로라도 멍 때리는 환경과 시간을 만들어야지.
주기적으로 고성을, 아니 바다를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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